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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 과정
지하철 전체가 도시의 깊숙한 지하를 달리도록 지어졌다. 대부분의 시설이 육체노동으로 건설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건설 관련 세부사항은 국가 기밀로 부쳐지고 있으나 대규모 사업인 만큼 군 병력을 대거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61년
시작된 인민경제 7개년 계획기간에 지하철 건설계획이 수립되어 계획기간이 마무리될 무렵인 1968년에 소련(지금의 러시아)과 중국의
도움으로 천리마선과 혁신선에 대한 착공이 동시에 시작되었다. 현재의 지하철 체계는 총 4단계에 걸쳐 건설되었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밝혀진 과정은 다음과 같다.
| 계획 |
이름 |
완공일 |
구간 |
역 개수 |
| 1단계 |
천리마선 |
1973.9.6 |
봉화~붉은별 |
6 |
| 2단계 |
혁신선 |
1975.10. |
혁신~락원 |
5 |
| 3단계 |
혁신선 |
1978.9. |
혁신~광복 |
4 |
| 4단계 |
만경대선 |
1987.4.10 |
봉화~부흥 |
2 |
구 동독 자료에서는 건설 단계가 다음과 같이 약간 다르게 보고되고 있다.
| 계획 |
이름 |
완공일 |
구간 |
역 개수 |
| 1단계 |
천리마선 |
1973.9.6 |
봉화~붉은별 |
6 |
| 2단계 |
혁신선 |
1978.9. |
광명~황금벌 |
6 |
| 3단계 |
혁신선 |
1985. |
황금벌~광복 광명~락원 |
3 |
| 4단계 |
만경대선 |
1987.4.10 |
봉화~부흥 |
2 |
10년 전부터 계획되어 건설된 지하철이라고는 하지만, 우연찮게도 남한의 서울지하철의 개통일인 1974년 8월 15일보다 약 1년 빠르게
건설됨으로써 한반도 최초의 지하철의 영예는 평양이 차지하게 되었다.
천리마선의 연장이 '만경대선'이고, 그 완공이 매우 나중에 이루어진 중요한 이유는, 1971년 봉화역 건설 당시 이곳에서 대동강 쪽으로
향하는 하저 터널이 붕괴되어 1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는 대형 참사가 일어난 것을 들 수 있다. 이 때 고위 관리직의 자녀들도 많이
희생되었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천리마선은 봉화역에서 계속 남쪽으로 노선을 이어 대동강을 가로지르게 계획했던
것인데, 이 사고를 비롯하여 5번 정도 대동강 방향으로의 하저 터널을 뚫으려던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결국 대동강 횡단
계획은 취소되었고 1973년 봉화역을 종점으로 천리마선이 마무리되었다.
그 후, 남쪽이 아닌 서쪽으로 노선 계획을 변경하여 지금의 부흥역으로 마무리 짓게 되었는데, 원래의 천리마선과는 별개의 노선이고,
노선의 진행 방향이 김일성의 출생지인 만경대로 향하고 있음을 부각시키기 위해 불과 2 역밖에 되지 않는 이 확장 노선에 만경대선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만경대선 준공식에 대해서는 조선중앙통신의 1998년 7월 17일자 기사에도 언급이 되어있는데
김일성이 행사장에 나오게 되자 내리던 비가 감쪽같이 멈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래는 당시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준공식에 참석
하여 새로 지어진 부흥역을 둘러보는 사진이다. (사진 출처:
평양지하철 안내책자)
1987년 만경대선 완공 이후의 추가적으로는 개통된 사례가 없으나, 몇 개의 노선 확장 계획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계획 |
이름 |
완공일 |
구간 |
역 개수 |
| 5단계 |
혁신선 |
2000.10. |
광복~만경대 |
6 |
| -- |
천리마선 |
-- |
붉은별~룡성 |
4 |
| -- |
만경대선 |
-- |
부흥~만경대 |
2 |
5단계는 2000년에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개통을 알리는 보도 자료가 존재한 적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공사가 지연되고 있거나
다른 목적에 의해 은폐되었을 수 있다. 이는 만경대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한편, 장기적으로는 지하철이 평양의 항구인 진남포까지 연장될 것이라고 한다.
- 군사적 목적
평양지하철은 평양 도심 지하에 다양하게 설치된 군사용 기지 및 터널과 유기적인 구성을 이루고 있다.
역 자체가 지하로 매우 깊게 건설되어 있으며 승강장 입구에는 60 ~ 80톤이나 나가는 두꺼운 아연 재질의 문이 설치되어 있어서 원자탄
폭발에 의한 방사선을 차단하게 되어 있다. 또, 지하철 궤도가 지나는 터널 측면에는 150m 정도의 간격으로 반대쪽과 서로 통하는 터널이
발견된다. 이런 점들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 지하철 역이 거대한 방공 대피소 내지 병력 집합소로 활용되기 위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지하철 궤도가 지나는 터널은 지상에서 100 ~ 120m 아래에 위치하며, 언덕 지형에서는 150m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지하철 역 또한 지하
22m ~ 100m (부흥역이 가장 깊은 곳에 있다고 한다)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지하에 있는 지하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무리하게 깊은 지하에 설치되다 보니 큰 문제점이 있다. 지상 입구에서 지하에 위치한 역까지 내려가려면 중국 상하이
승강기공장에서 제작한 에스컬레이터(봉화역에 설치된 것이 예외적으로 평양 승강기공장에서 제작되었다)를 타고 가야 하는데, 에스컬레이터의
길이가 수백 미터에 이르러 비상식적으로 길다 보니 가동하는데 엄청난 양의 전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력 사정이 여의치 않는 북한의
실정에 걸맞지 않을 수밖에 없다.
(참고자료:
2001.11.06 - 조선일보 NK리포트 제54호)
[ALT]
지하 군사기지의 존재와 평양지하철의 연계성은 1994년 Yossef Bodansky씨가 저술한 '한국의 위기(Crisis in Korea)' (뉴욕 SPI
Books 출판)에서도 나타난다.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북한은 1991년 당시,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미국과
곧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지하에 활주로와 해군기지를 설치하는 등 각종 군사기지를 눈에 띄게 확장시켰다고 제583
건설부대에서 최근에 탈영한 사람이 증언하였다. 북한은 또한 '전시 작전 지휘소'를 평양시 소성구역 지하 100m 지역에 완공하였는데,
여기서는 약 5000명의 정예부대가 서방과 예상하던 핵전쟁을 지휘할 것으로 계획되었다. 이 '슈퍼 벙커'는 미로처럼 얽힌 터널과 연결되어
있으며, 핵폭탄 공격에 버틸 수 있도록 강화된 평양지하철 시스템이 이 터널 시스템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참고자료:
2001.10.16 - 조선일보 NK리포트 제51호)
[ALT]
여기서 언급된 '전시 작전 지휘소'란 락원역 근처에 설치된 '지하광장'을 의미하는데, 이곳은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전시에 지휘벙커로 활용하는
곳으로, 이들을 위한 각종 통신 및 숙식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평양지하철 2단계 공사 당시 인민군 공병총국의 지휘로 병행하여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 병력수송을 위한 대형 탱크를 비롯한 각종 병력 물자도 비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지하철 구간 사이로는 지하도로가 놓여져 있는데, 이 도로는 김일성이 집권할 당시 주석궁으로 쓰이던 금수산기념궁전에서 평양
순안국제공항까지 이어져 있으며 금수산기념궁전은 광명역과도 연결되어 있다. 광명역은 혁신선의 종점인 락원역의 바로 다음 역이다. 이러한
연결관계를 보아 원래는 유사시 김일성이 급히 피난해야 할 경우를 대비한 탈출로로 만든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북한을 집권하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군 사령부와 함께 락원역의 지하광장에서 순안공항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참고자료:
2001.07.19 - 조선일보 NK리포트 제40호)
[ALT]
광복역 ~ 만경대역 노선 확장 계획의 경우도 군사적인 의도가 있다. 완공이 된다고 가정할 경우 혁신선은 김일성의 출생지를 향하여 광복 거리
밑을 달리게 된다. 그런데 광복 거리는 아파트 단지가 늘어선 곳으로, 이미 전차가 운행하고 있다. 게다가 확장되는 노선은 김일성대학과
1993년에 완공된 만경대의 핵 감시 방어 초소(Nuclear Watch Guard Post)와도 연결된다. 그러므로 교통난 해소를 위한 확장이 아니라
방어초소와 지하광장을 혁신선을 통해 직접 지하로 연결시키는데 목적이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참고자료: FAS의 북한 공격무기 가이드)
- 비밀 노선의 존재
김희태씨에 의하면, 평양의 초창기 지하철 차량을 공급했던 장춘 객차 회사 측의 서류에는 평양으로 수출된 차량의 수가 총 345대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몽골의 울란바토르 지하철 회사에 문의해본 결과 8km 연장의 지하철 체계에 배차간격을 30분으로 놓고 안정적인 운행을 하려면 각
노선에 4 ~ 6대의 열차가 필요하고 한다. 여기서 평양은 배차간격이 7분 정도였으므로 이의 4배인 24대의 열차가 각 노선마다 투입이
되어야 한다고 치면 한 열차에 3량이 달렸고 노선이 2개이므로 144량 정도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예비 부품을 조달하거나
수송인원 증가를 고려하기 위해 예비 차량을 확보한다고 치더라도 주문량의 절반 가량이 놀게 되는 셈이다.
한편, 1998년에 이 차량들이 다시 중국으로 팔려갔는데 이 때 96량이 돌아간 것으로 전해진다. 받았던 시점과 돌아간 시점 사이에 25년
가량의 공백이 있었고, 4량씩 사용되도록 했던게 부품 조달의 명목으로 3량으로 준 것을 감안하면 어림잡아 앞서 계산된 노선 투입 필요
차량 전체가 돌아갔다고 보면 된다. 그러면 남아서 놀게 되던 차량이 평양지하철에 투입이 되었는가? 그렇지도 않다. 평양지하철에는 현재
독일에서 수입한 베를린 D 차량이 운행중인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럼 결국 150~200대로 추정되는 유휴
DK4 차량의 행방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이들 차량은 북한이 공개하지 않은 정부 관료 전용 비밀 지하철 시스템에 투입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구체적인 정보가 밝혀진 바는
없으나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규모 지하 구조물 공사가 계속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현재 알려진 평양지하철 노선이 건설될 당시
동시에 비밀 노선이 개설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모스크바에 이러한 비밀 지하철이 건설된 전례가 있다. 그리고 유휴 차량의 수로 미루어 그 길이는 족히 현재의 평양 지하철 1개 노선
수준 이상일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선확장 계획도에 나온 계획 구간 일부가
비밀 용도로 전환되었을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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