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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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지하철의 전동차량 - 베를린 GI

평양 DK4

베를린 GI

베를린 D

차량의 제원


since 2002.12.10.
800x600 이상에 최적화


평양지하철 관계자들은 1996 ~ 1997년 무렵에 베를린 근방의 Hennigsdorf에서 1978 ~ 1982년 사이 제작이 된 구 동독 GI 타입(Gisela라는 별명이 붙어있음)의 2량 연결 차량(double-car) 60대 (1량씩 떼어서 계산하면 120대)를 구매하였다. 이 독일제 차량은 종전에 사용하던 중국제 차량보다 상당히 안정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래 사진은 Simon Bone씨가 부흥역에 방문했을 때 촬영한 GI 열차의 모습으로, 베를린 교통정보지 'Berliner Verkehrsblätter' 2000년 3월호 표지로 실린 바 있다. 사진을 클릭하면 표지를 감상할 수 있다.
(사진 출처: Simon Bone)

분단된 국가에서만 이용되는 불운의 전동차 Gisela


맨 앞과 맨 뒤 차량에는 아래 그림처럼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이 붙어있다. 원래 김일성 사진만 있었다가 김일성 사후 김정일 사진이 추가된 것이라 한다. 이 그림 밑에 차량을 제작한 회사의 명판이 가려져 있어 외국에서 수입했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하고 있다. 참고로 제작 회사의 이름은 "Vereinigter Schienenfahrzeugbau der DDR - VEB Lokomotivbau-Elektrotechnische Werke «Hans Beimler» Stammbetrieb Hennigsdorf"로, 아마 명판 전체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르지 않았을까 싶다.

눈가리고 아웅하기


이 열차는 너비가 좁아서 분단 시절 독일에서 사용될 당시 동부 베를린의 유일한 좁은 폭(narrow-profile) 노선인 Pankow (Vinetastraße) - Thälmannplatz (나중에 Otto-Grotewohl-Straße으로 개칭되었으며 현재 이름은 Mohrenstraße임) 구간을 달렸다.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 전까지는 Potsdamer Platz를 거쳐 서쪽으로 계속 운행되기도 했다. 너비가 좁은 점은 사실 문제가 되는데, 원래 평양지하철에 사용되던 중국제 열차는 폭이 2.70m인데 비해 이 기종은 2.28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열차를 원래의 상태 그대로 도입할 경우 승강장 끝과 열차 문 사이가 크게 벌어지므로 탑승객이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 또, 중국제 열차보다 바닥이 낮아서 열차에 탈 때 한 계단 내려가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열차 옆에 발판을 설치해야 하는데, 그리스 아테네의 ISAP 노선에 독일이 판매했던 GI 타입 열차도 같은 이유로 아래에서 보이듯이 발판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사진은 아테네 - Piraeus 노선을 달리던 GI 타입 열차의 모습인데, 1983 ~ 1984년 사이에 베를린으로 다시 돌아온 이후 모두 평양 행의 운명을 맞이했다.
(사진 출처: Simon Bone)

베를린 찍고 아테네 돌아서 평양으로


한편, 앞서 언급된 좁은 폭 노선은 통일이 되면서 이 노선은 서 베를린쪽 노선과 1993년 11월 다시 이어지면서 베를린 지하철 2호선이라는 이름으로 운행되고 있다. 이 때 베를린 교통 관청 BVG는 베를린 지하철 시스템이 통합되면서 도입된 새로운 신호체계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이 열차를 개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를 대신하여 신종 G 타입이 이 신호체계를 사용하여 운행되고 있으며 베를린에 가보면 자주 만나볼 수 있다. 아래 그림은 Alexanderplatz 역에서 G 타입 전동차를 촬영한 것이다.
(사진 출처: Simon Bone)

깔끔한 신종 G 타입


다음 사진은 'Berliner Verkehrsblätter' 1997년 5월호 표지에 실린 GI 타입 열차의 선적 장면이다. 평양으로 보내지는 GI 타입 열차 80대가 1997년 2월 중순 발트해에 위치한 Wismar 항구에서 중국 광저우 출신 화물선 '가오 링'에 실리고 있다. 이들은 1996년 12월 베를린을 출발하여 평양에 1997년 4월 6일에 도착했으며, 4월 10일에 모두 내려졌다. 나머지 40대는 '레핑 링' 화물선에 같은 해 3월 23일에 선적되어 평양에 3주 후 도착했다. 추후 6대가 더 보내졌는데, 이들은 예비 부품을 빼내기 위한 것이었다.
(사진 출처: Simon Bone)

종착역은 평양, 평양역입니다


Berliner Kurier지 1996년 8월 23일자에 의하면 북한은 대당 3만 독일 마르크(한화 1870만 원)를 지불했다고 하며, 원래는 폐기 처분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폐기될 것 치고 비싸게 받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북한이 60대 모두 구매하는데 든 비용은 베를린 시가 A3L 타입 전동차 하나를 사는데 드는 비용보다 적다 (A3L은 대당 4백만 마르크, 한화 25억 원). 기존 시스템에 2량 연결 차량 단위로 48대가 있었으므로 모든 열차를 GI로 바꿔도 충분할 것으로 보이지만 GI 타입의 도입은 단지 임시 방편에 불구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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